일상기록
경복국-메밀꽃 필 무렵 본문
평소엔 예정에 없던 외식을 하더라도 평을 꼭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들어가는데
근처를 지나가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평도 안보고, 심지어 손님도 없던 상태인데 무작정 들어갔다.
손님이 없던 건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직후란 걸 확인했을 땐
파리 날리는 집은 아니겠구나 하고 안심을 했다.
그러고 나서 메뉴판을 보는데
메뉴의 수가 적은 것은 둘째치고 조리 시간이 길어서 추가 주문을 받지 않는다니….
살면서 이런 식당은 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얼마나 주문 시간이 길어서 그러나 싶은 마음에, 일행들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집이길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단 메인으로 먹을 메밀 칼국수 3인분에 전 하나를 주문했고,
예상보다 훨씬 빨리 나오기 전에 뭐가 오래 걸린단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먹은 전을 먹는 순간 떠오른 건
'예상보다 훨씬 맛있다.' 였다.
기대하지 않은 상태로, 메밀 같은 걸로 만든 음식보다 자극적인 맛, MSG를 사랑하는 나에게도
오히려 집밥보다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맛' 자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목이 정말 마를 때 먹는 물이 맛은 없지만 맛있단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듯이
(물론 물처럼 맹 맛이란 건 아니지만)
그야말로 신기루 같은 음식이었다.
자극도, 양념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맛있게 느껴지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 기술일까.
배까지 고픈 상태여서 정신없이 전을 다 먹어버리고 나서는 다들 하나같이 '아 진작 여러 개 주문할걸….'란 반응이었고,
손님이 몇 없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문시도를 해보았으나 역시나….
아쉬운 마음은 3인분을 한 그릇에 담아 비주얼 쇼크를 일으켰던 메밀 칼국수를 먹으며 달래었다.
(메밀 칼국수 또한 맛은 있었으나 전의 충격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맛있긴 마찬가지)
그렇게 한참 먹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 순간 손님이 거의 다 차다 못해
옆에 붙은 테이블을 분리해서 자리를 내줘야 할 순간까지 오게 되어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가게 내부에 리모델링 전 사진들이 연식이 좀 있어 보여 오래되었구나! 정도만 생각했지
설마하니 '수요미식회'까지 나온 유명한 식당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지나가다가 배고파 들어간 식당이 유명한 맛집인 데다 손님도 없던 상태에서 쾌적하게 먹을 수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 행운이 아니던가.
거기다 이런 유명한 가게인 걸 알고 갔다면
'맛집이래서 와봤더니 삼삼하니 나쁘진 않은데 그게 다네'라고 생각했을 거 같아
우연히 찾아 들어가게 된 것이 더더욱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간다면 꼭 전을 5장 이상은 시켜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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