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 본문
매일 매일 일기 쓰는 귀찮음은 초등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년 초에 다이어리를 쓰기로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하루 이틀 미루다 방학이 되면 마지막 날에 몰아 쓴다고 밤을 새우는 초등학생들도, 연초에만 빽빽하고 뒤는 허연 다이어리를 몇 개씩 날리는 사람들도 꽤 있을 정도로 꾸준히 무언가 기록하기란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시노다 부장은 올해 기준으로 약 28년 동안 삼만 번에 가까운 식사일지를 한 번도 빠짐없이 써왔다고 한다니 지금 방학일 터인 초등학생들은 특히나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거기다 놀라운 것은 음식 그림을 사진 없이 스케치 없이 기억으로만 한 번에 그린다는 것으로, 심지어 술에 취해도 30종류까지는 접시의 무늬까지 기억한다는 것을 보고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도 생긴 마당에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아날로그의 위대함인 것인지 부장님의 타고난 기억력인진 모르겠지만 잠시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엔 디지털카메라가 없었으니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 애로사항이 있어 이런 아날로그 일기를 쓰게 되었고 지금까지 유지되었다지만 부장님의 꾸준함과 합쳐져 평범한 샐러리맨의 음식일지는 한 인간의 외식문화의 역사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책의 배경을 알아보면 엄청나 보이지만 내용은 오히려 한없이 소소하고 평범하다.
세월이 쌓아온 실력인지 타고남인지 꼼꼼하게 그린 깔끔한 음식 그림에 명칭, 먹었을 때의 감상과 약간의 일상, 가격이 적혀있는 정도로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고 한국에서도 방영하고 있는 만화 '고독한 미식가'를 다르게 표현한 거 같기도 하다.
별것 없어 보이지만 일단 남이 그린 그림, 일기를 보는 것은 재미있지 않은가
거기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 동족상잔이라고 표현한다는 등의 한마디들을 보면 조금 피식하기도 한다.
전문 미식가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기록한 일기라 대단한 수식어나 식당의 객관적인 후기 등을 기대하고 볼 것은 못 되지만 그 나름의 연륜과 식사경험을 바탕으로 철학과 감상을 보고 있으면 공감이 가기도 하고 배가 고파지기도 하고 여하간 사소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아니 최소한 그림 보는 재미라도 있다. 이 아저씨는 명성까지 있으니 그냥 직장을 관두거나 정년퇴직을 하게 되어도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의 행사로 국내에 온 모양인지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먹은 음식들에 대한 일기를 무료 이북으로 내놓기도 했는데 일본인의 평양냉면 후기 같이 보기 힘들 것 같은 걸 볼 수 있어 신선한 재미가 있다.
더 관심이 간다면 시노다 부장 본인 블로그에도 일기를 올리는데 메모 부분은 그림 스캔본이 아니라 번역기로도 충분히 볼 수 있으니 최신 일기와 더불어
부장님의 손글씨를 감상할 수도 있다.
책을 보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구절
1년에 월요일은 52~53번이나 돌아오지만 조금도 좋아지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더욱 월요일 점심에는 만족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북돋아줘야 한다
내일은 어디로 갈까. 그래, 그곳으로 가자.
맛있는 것을 많이 먹기 위해서라면 한 끼 정도는 굶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나는 역시 조금 이상한 53세인 걸까. 아니면 단지 식탐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양의 해였던 작년에 먹을 때 유난히 더 맛있게 느껴진 건 기분 탓일까.
여전히 양고기를 먹는다
양의 해가 아니어도 계속
원숭이해라고 해서 원숭이를 먹을 수는 없다.
▲작가의 블로그
https://nstore.naver.com/ebook/detail.nhn?productNo=3460970
▲시노다 부장, 한국에 오다(무료 이북)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780275&memberNo=27908841&vType=VERTICAL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780275&memberNo=27908841&vType=VERTICAL
http://www.hankookilbo.com/v/69245ab4a9374e41a08c285a2a9edbe1
▲시노다 부장관련 포스트와 기사들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 - 시노다 나오키 지음, 박정임 옮김/앨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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