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고래 본문
흡인력 있는 소설로 가끔 언급되길래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보게 되었는데 첫인상은 이게 진짜 흡입력이 있다고? 였다.
책을 보기 전엔 흡인력이 있다면 사건이 기가 막히거나 자극적이거나 가벼운 문체일 거로 생각해서 책을 찾았는데 요즘 나오는 책들과는 다르게 새빨갛고 기묘한 표지에 455쪽이나 되는 페이지, 글씨도 꽤 작고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였다.
그래서 솔직히, 이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영 자신이 없었다.
애독자라고 보기 힘든 나이니 이 평가가 그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을까, 남들은 그렇다 해도 나는 다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여하튼 표지와 두께에서 오는 압박감이 강렬했다. 그렇지만 궁금은 하니 읽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춘희. 씻고 끼니를 겨우 해결하고 쉬고 과거의 이야기가 가끔 언급되는데 대사도 없이 묘사와 행동만 쭉 설명된다. 별거 없는 행동을 하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적나라하다 해야 할지 예쁘고 꾸미는 느낌 없는 행동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보다 보니 어느새 노파 이야기로, 금복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따로 배경이 어느 시대라고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주변 설명으로 머릿속에 인식이 되고, 한자라거나 평소에 쉽게 보지 못하는 표현들이 나오지 않음에도 막히지 않고 술술 읽힌다.
성적인 묘사도 적나라하고 또 자주 나오는데 날것 그대로에 과장까지 섞인 느낌이라 성적인 걸 읽는다는 느낌도 안 나고 거기에 더해 중간중간 나오는 상황에선 그로테스크한 느낌도 나서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고 한편으론 이런 묘한 느낌에서 역시 한국 사람이 쓴 소설이란 느낌도 와닿았다. 왜 이런 느낌에서 와닿는지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원래 이런 예쁘게 포장됨 없이 정육점에 매달린 고기마냥 적나라한 스타일의 작품은 싫어해서 잘 읽히면서도 내내 은근히 꺼려지기도 한 이상한 경험을 받다가 1부 끝나는 부분에선 영 찜찜해져서 이걸 마저 읽을까 고민되어 잠시 책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3분의 1이나 읽은 거 아까우니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읽어 나갔다.
춘희의 엄마인 금복이 시골에서 빠져나와 사업을 하나하나 차리고 성공하는 모습은 마치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처럼 대리만족과 희열이 느껴졌고, 대담한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한편으로 금복을 내치는 모습이 불쾌하여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는 복합적인 느낌이 드는 캐릭터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춘희였으나 사실상 고래의 주인공은 엄마인 금복이라 생각하는데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들 특이한 면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하고 보기 힘든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과장 좀 보태서 금복의 대서사시라는 느낌마저 받는데 그런 금복이 끝까지 성공했으면 소년만화였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아 작중 완성도나 어울림과 상관없이 대리만족이 꺾이어 아쉽게도 느껴졌다. 물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이 소설의 매력이 더더욱 살아난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의미로도 파란만장했던 금복과 다르게 춘희는 썩 행복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먼 삶 위주로 살게 되었으나 오히려 끝부분만 보면 금복보다 긍정적인 삶인 것 같기도 하고, 마무리 표현이 특이하여 이 소설의 여운이 더더욱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고래의 내용 자체가 남들한테 구전되는 것을 옮긴 것 같이 진행되다 보니 입으로 옮겨지는 이야기들의 과장됨을 표현한 건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일도 일어나기도 하는데(작중 인물들의 대사는 전부 "따옴표"가 아니라 -표시로 대신해있고 내적묘사 또한 독백 없이 해설로만 적힌 것이 더더욱 구전이란 느낌을 강조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어쩐지 자연스럽게 받아지기도 한다. 작중 등장인물의 반응이 자연스러우니 옆에서 듣거나 보고 나도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달까. 그리고 그 많은 등장인물도 또 다양한 캐릭터로 나와 군상극 같은 모습도 띠는데 하나로 모였다가도 다시 퍼지고 그러다가도 다시 모이기도 하면서 짤막하게라도 한 명 한 명의 시작, 혹은 중간부터 끝이 묘사됨도 특이했다.
표현력이 부족하여 이 소설의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잘 감이 잡히지도 않고 끝부분에 작가를 취재한 기자도 어느 정도 비슷한 감상을 한 것 같은데 여하튼 이 소설이 왜 상을 받았는지도 알 것 같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흡인력이 있다는 건 분명하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읽다 보면 약장수의 이야기에 취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읽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강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고래 - 천명관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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